녹록치 않은 현실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오늘, 신앙을 가졌다 해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은 여전히 팍팍하고 가야할 내일은 아득하기만 하다.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의 걸음에 자신이 없어질 때가 찾아온다.
그럼에도 믿는 바를 주어진 현실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내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것일까?
일제강점기 그 엄혹한 시절에도 올곧이 신앙을 지키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살아간 사람, 김교신.
시대의 어둠 가운데 그는 “어떻게” 가야할 길을 찾았을까, 확고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어떠한 순간에도 빛을 발하며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그의 가르침은 헤매는 이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구하는 이들에게 스승이자 동지가 되어줄 것이다.
다시, 시작!
김교신
한국의 종교인이자 교육가로 1901년 4월 1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지리박물과를 졸업하였고, 유학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며 무교회운동(無敎會運動)을 펼치던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송두용, 유석동, 양인성, 정상훈, 함석헌 등 한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우리말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조선성서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이들과 함께 1927년 7월 월간 동인지 «성서조선»을 창간, 교리전파에 심혈을 기울였다.
영생고보, 양정고보, 개성 송도고보, 경기중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독립사상과 자립의지를 심어주기도 하였다.
기성 교회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민중 속에 파고들어 그들의 영혼을 신앙으로 각성시키고자 하였다. 민족의 시련을 성서연구 중심의 기독교신앙으로 극복해 나가자고 하였으며,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한국의 쓰라린 역사 가운데 찾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